제6장

서미희는 택시를 타고 서씨 집안으로 돌아왔다.

그녀가 거실로 들어섰을 때, 화기애애하게 들려오는 김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졌다.

서미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거실을 지나쳐 곧장 자기 방으로 가려고 했다.

서북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서미희, 너 거기 안 서? 집에 들어와서 어른을 보고도 인사도 안 해? 지금 그게 무슨 태도야?”

“무슨 보건교사 하나가 네 편 들어준다고, 경찰에 신고한다는 말 따위나 지껄이면서 든든한 빽이라도 생긴 줄 알아? 우리 서씨 집안에서 나가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서북현은 말할수록 화가 치미는지 벌떡 일어섰다. “우리가 김서아만 편애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네가 걔한테 얼마나 심한 짓을 했는지 돌아보지도 않지! 걔 아버지가 네 목숨을 구해줬어. 우린 널 대신해서 그 빚을 갚고 있는 거라고!”

서미희는 듣기만 해도 피곤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소파 쪽을 바라봤다. “남윤 오빠, 북현 오빠, 저 왔어요.”

이 정도면 됐겠지?

서남윤이 입을 열었다. “밥 먹어야지.”

“두 사람은 먹어. 난 배 안 고파.”

서미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남윤 형, 쟤 태도 좀 봐. 갈수록 천방지축이잖아!”

김서아가 입을 열었다. “북현 오빠, 화내지 마. 다 서아 잘못이야. 어쩌면 내가 서씨 집안을 떠나면 미희 언니가 저렇게 화내지 않을지도 몰라.”

“바보 같은 소리 마. 나갈 거면 서미희가 나가야지, 네가 왜 나가?”

등 뒤로 그런 대화들이 들려왔다. 서미희는 걸음을 재촉해 방으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갔다.

그녀는 문에 기댄 채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이번에는 다시는 그놈의 형제애 따위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다음 날, 서미희는 평소처럼 학교에 갔다.

김서아는 그녀와 같은 차를 탔다.

김서아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미희 언니, 아직도 화났어?”

“김서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기하는 거, 안 힘들어?”

서미희는 한쪽으로 기대 눈을 감았다. 김서아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김서아의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차 안에는 기사 아저씨도 있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어 기사 아저씨에게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기사 아저씨는 순간 큰 아가씨가 정말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렇게 계속 김서아를 괴롭힐 수 있단 말인가. 이따가 꼭 남윤 도련님께 제대로 말씀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서미희는 학교에 도착한 후, 잊어버린 내용이 많았기에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필기했다.

김서아의 따까리들과 그녀의 추종자들이 옆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도 서미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이런 애들과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저녁,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서미희는 여섯째 오빠 서유민이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김서아가 애교 넘치는 얼굴로 달려갔다. “유민 오빠, 돌아왔구나. 그동안 보고 싶었어!”

서유민은 원래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김서아의 애교에 금세 얼굴이 풀렸다.

서미희는 두 사람이 노닥거리는 것을 힐끗 보고는 위층으로 올라가려 몸을 돌렸다.

서유민이 고개를 들었다. “서미희. 북현 형이 네가 점점 말을 안 듣는다고 하더니, 원래는 안 믿었어. 근데 이제 유민 오빠 소리도 안 하는 거야?”

서미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또 시작이었다.

그녀는 시간을 더 낭비하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얌전히 불렀다. “유민 오빠.”

“그래야지. 맞다, 나 이번에 돌아와서 팀을 새로 꾸리려고 해. 남윤 형이랑 북현 형도 동의했으니까 너도 들어와.”

서미희는 책가방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왔다. 전생에도 유민 오빠는 똑같이 말했었다.

유민 오빠를 기쁘게 하려고, 오빠들의 관심을 받으려고.

그녀는 망설임 없이 승낙했고, 미친 듯이 훈련에 매달렸다. 심지어 수능까지 뒷전으로 미뤘다.

결국 돌아온 건 뭐였을까?

서유민은 말했다. ‘서미희, 넌 이미 네 실력을 증명했어. 이제 그 자리를 서아한테 양보해. 걔도 우승의 기쁨을 한번 느껴보게 해줘야지.’

‘서미희, 이 팀의 캡틴은 나야. 내가 사람을 바꾸라면 바꾸는 거야.’

전생에 그녀는 억울하게 김서아와 교체당했다.

하지만 그녀가 죽어라 경기에 임하지 않았다면 결승 진출은 꿈도 못 꿨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그녀를 빼버리다니.

손만 뻗으면 닿을 우승의 영광을 김서아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었다.

그녀의 노력은 대체 뭐였던 걸까?

그래서 이번에는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서미희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유민 오빠, 난 시험 준비에만 집중하고 싶어. 게임 때문에 정신 팔리고 싶지 않아.”

서미희는 여섯째 오빠 서유민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명령이었다.

방금 유민 오빠의 말은 자신과 상의하는 게 아니라, 통보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미희, 내가 잘못 들었나? 네가 감히 내 제안을 거절해?”

서유민의 표정이 썩 좋지 않게 변했다. 그는 서미희에게 팀에 들어오라고 제안하면서, 이丫头가 거절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난 몇 년간 서미희는 그의 말이라면 뭐든 따랐고, 단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었으니까.

서미희는 당당하게 말했다. “제안이라면, 거절할 수도 있는 거죠.”

그녀는 서유민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의 표정이 굳어지며 체면을 구기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녀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서유민이 홧김에 소리쳤다. “서미희, 잘 생각하고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괜히 고집부리지 마. 나중에 내가 기회 안 줘서 울면서 매달리지 말고!”

그는 넷째 오빠에게서 요즘 며칠간 있었던 일을 들었다. 서미희가 심지어 토라져서 그가 선물한 금빛 트로피를 김서아에게 사죄하는 데 썼다는 것까지.

그 트로피는 그가 프로 선수가 된 해에 따낸 우승컵이었다.

그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물건이었다.

서미희가 감히 그걸 남에게 줘버리다니.

김서아가 조심스럽게 서유민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유민 오빠, 화내지 마. 오빠 팀에 들어가는 건 내 꿈이야. 미희 언니도 생각이 정리되면 분명 동의할 거야.”

김서아가 말하지 않았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그 말이 서유민의 마음속 분노에 불을 지폈다.

그는 서미희가 분수도 모르고 감히 자신을 거절한다고 생각했다.

서유민이 서미희를 사납게 쏘아붙였다. “기회는 한 번뿐이야. 지금 당장 생각해. 우리 가족 팀에 들어올 건지, 말 건지!”

서미희는 문득 좀 우스워졌다. 알고 보니 유민 오빠도 종이호랑이였다. 김서아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꼴이라니.

김서아가 걱정하는 척 말했다. “미희 언니, 그냥 빨리 알겠다고 해. 유민 오빠 화나게 하지 말고.”

서미희가 그녀를 쳐다봤다. “김서아, 네가 그렇게 팀에 들어가는 게 꿈이라면, 내가 그 자리 너한테 양보할게.”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책가방을 꺼내 숙제를 시작했다. 많은 내용이 생소해서, 1분 1초를 아껴서 보충해야 했다.

가정부가 와서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방으로 가져다주세요.”

“하지만 남윤 도련님과 다른 분들이 모두 식당에서 아가씨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방에서 혼자 먹지 말라는 뜻이었다.

서미희는 펜을 꽉 쥐었다. 아직 서씨 집안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금은, 일단 맞춰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남윤 오빠, 북현 오빠, 유민 오빠, 그리고 김서아가 식탁에 앉아 있었다.

서씨 집안은 식구가 많아 기다란 대형 식탁을 썼다.

서미희는 곧장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조용히 접시를 가져와 음식을 담았다.

식당의 분위기는 조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곧 김서아의 애교 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오며 분위기는 금세 부드러워졌다.

서유민은 서미희를 힐끗 쳐다보며 일부러 말했다. “서아야, 이따가 우리가 직접 게임 가르쳐 줄게. 너처럼 똑똑하면 금방 배울 거야. 어중이떠중이들보다 훨씬 낫지!”

김서아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 “유민 오빠, 저 열심히 할게요. 절대 오빠 발목 잡지 않을 거예요!”

서미희는 이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김서아가 들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부활전에서 실패하면, 서유민은 다시는 대회에 나갈 기회가 없을 테니까.

그녀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 화기애애한 저쪽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예전처럼 얼굴을 굳히거나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이제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 그들을 보며 말했다. “다 먹었어요. 천천히 드세요.”

인사도 없이 가면 또 잔소리를 들을지도 몰랐다.

서남윤이 고개를 들었다. 서미희가 질투하며 토라지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훨씬 냉담해져 있었다.

서남윤은 마음이 약해져 입을 열었다. “미희야, 정말 가족 팀에 안 들어올 거니? 너 게임에 재능도 있잖아. 우리 가족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우승하자!”

서미희, 내가 널 위해 멍석을 깔아주마.

이전 챕터
다음 챕터